커미션 A (3137자)
commission/works l


(이름 블라인드)



 쉴드의 휴일이란 사전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한창 쉬고 있는 중이라 한들 갑작스러운 호출에는 무기를 꺼내 들고 나가야 한다든가. 위기 상황이라면 그때가 샤워를 하던 중이라 할지라도, 설령 자다 일어나서라도 욕하며 나갈 테지만 오늘은 아니다. 잠자코 핸드폰을 끄고 현관 앞 테이블에 얹었다. 누구든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내겐 대개 B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랬다.


 거실로 들어가자 소파에 B가 앉아 있었다. B의 검은 머리칼 위로 달그림자가 비쳤다. 계절이 덜 풀린 터라 창문은 닫힌 채였다. 유리창 너머로 검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달만 엿보였다. 본래 달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B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다.


 “B.”


 이름을 부르자 노트북 액정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던 B가 얼굴을 들었다. 연보랏빛 눈동자와 마주하자마자 거실을 가로질러 B 옆에 몸을 앉혔다. 왔어요? 하고 묻는 목소리를 음미하는 것 또한 일과의 한 부분이었다.


 “기다렸어? 먼저 자도 괜찮았을 텐데.”


 늦은 새벽, 어둠이 창궐하는 시간. 물론 쉴드에는 밤낮이 없다. 몇 날 밤을 새우는 것쯤은 익숙할 걸 알았다. 그런데도 걱정이 됐다. 염려를 하고 싶었다. B를 무리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절반. 혹은…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반. 인간은 이중적이다. 나 역시 그런 충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얼굴은 보고 잠들고 싶었어요.”


 종종 생각한다. 사람은 어디까지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예전에는 설령 감정이 해일처럼 몰아친대도 헤엄쳐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침몰하길 바라는 사람처럼 쏟아지는 파도에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B에게서 표류하고 싶다.


 “그래도 피곤할 텐데, 허니.”

 “괜찮아요.”


 오른팔을 B 뒤의 소파에 기댔다. 언제든 끌어안을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고 싶었으므로. 언젠가 B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무가 끝난 후에 당신이 나에게 가만히 입 맞추는 걸 좋아해요. 평이한 듯하지만 쑥스러운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가볍게 내려앉는 감각이 깃털같이 간지러워 좋아한다며 고백하던 성음. A 생에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삶을 살아온 적 있었나. 거칠고 투박한 놈이라는 평가만 지겹도록 들어오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들었으면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삼스레 실감했다. 아무래도 나는 B에게만큼은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모양이라고. 천성은 바뀔 수 없다, 그렇게 믿었음에도.


 고개를 숙여 B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임무가 끝날 때마다 B에게 입을 맞췄다. 고된 하루가 오늘도 끝났음을, 평온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맞닿고 나면 지쳤던 하루가 가라앉는 듯했다. 이것이 습관이 되었으면 했다. 절대 고치고 싶지 않은, 고칠 일 없는 습관이.


 “B. 허니가 나에게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게 꽤 많은데.”


 B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는 일. 기억하고자 노력해서 외운 게 아니었다. 저절로 새겨졌다고 보는 쪽이 더 합당했다. 키보드에서 손을 떨어뜨린 B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팔뚝에 B의 온도가 닿자 자연스럽게 팔을 굽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때, 들어볼래?”

 “또 무슨 얘길 하려고 그래요, A.”


 적당한 높이의 목소리가 동반하는 작은 웃음소리. 겨울이 옮겨붙어 서늘한 머리칼 위로 뺨을 붙였다.


 “그때 그러지 않았나. 우리가 연애하기 전에 말이야. 내가 보여주는 온도 차이를 좋아했다고.”


 일전에 B가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할 때와 평소의 모습이 상반되는 점이 좋았다고.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해지는 얼굴이 멋있다고 했었나. 본래도 그런 성정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뒤론 그에 답하기 위해서도 일을 할 때 누구보다 진지하게 굴었다.


 “또…… 내 눈동자에 푹 빠졌었다고도 했었지.”

 “그건 지금도 그래요.”


 가만히 듣던 B가 대답했다. 여전해요, 지금도. 지독히도 똑바른 발음이었다. 오해의 여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명확한 긍정. 말을 들은 순간 일순 폐부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숨이 벅찼다. 이윽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B는 내 눈을 사랑한다고 했다. 부드러운 헤이즐넛 빛깔이 좋다고 토로했다. B는 이렇듯 내 안에서 유려한 부분을 찾았다. 간지러운 키스, 부드러운 눈동자. 발견된 일면들은 오로지 B에게만 다정히 굴 수 있었다. B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당신 눈을 보는 게 좋아요.”


 거울을 볼 때마다 나 자신과 시선을 맞추곤 했다. B가 사랑하는 동공과 맞닥뜨린 채 이따금 상념에 빠졌다. 눈동자가 다른 색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사랑해 주었을지. 곧 쓸모없는 상상은 미끄러트린다. 상상이 무의미하도록 내 눈동자는 여전한 헤이즐넛 색이다. B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도 당신 눈동자를 사랑해.”


 B의 연보라색 눈을. 라일락을 닮은 향기로운 눈동자를.


 그 외에도 B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구석은 많았다. 달빛을 닮은 새하얀 손가락이 키보드 대신 방아쇠에 걸리는 순간을, 높지도 낮지도 않아 듣기 좋은 미성을, 언제든 쉴드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좋아하는 습성을, 그런데도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는 다정을, 냉정하지만 귀여운 것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풀리는 단단한 입술을. 


 “그럼 서로 사랑하는 거네요.”


 헤이즐넛과 라일락을 생각한다. B에게 바치고 싶은 꽃다발과 커피 한 잔을. 거칠고 날카로운 것들을 매끄럽고 무디게 만들어주는 숨 막히는 애정을.


 “…그렇지. 그래서 좋아.”


 B를 끌어안았다가 팔에서 힘을 풀었다. 일을 끝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치챘는지 B의 손이 다가와 느리게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A.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조금만 더 있다 잘게. 허니를 좀 더 보고 싶어.”


 침대로 향하는 대신 소파에 몸을 눕히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길게 누워 B의 허벅지에 머리를 붙이고 피로를 가라앉혔다. 은은한 달빛이 B의 뺨 위로 음영을 드리웠다. 가까워진 간격을 비집고 B의 체향이 밀려들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읊었다.


 “향수를 하나 살까 봐.”


 B가 고개를 수그렸다. 얼굴이 마주했다. 향수요? 되묻는 입술이 발음 따라 움직이는 것을 바라봤다. 


 “어디에선가 광고를 봤어. 향이 좋은 남자가 연애하기 좋은 남자라던.”


 텔레비전 광고였을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세계에서 방영하는 모든 뉴스를 틀어놓고 살펴볼 때였다. 한 방송사의 뉴스가 끝나고 곧장 송출되던 화려한 연출이 어쩐지 뇌리에 꽂혔다. 연애하기 좋은 남자. 이 단어가 문득 눈에 띈 것은 연애 중인 탓이리라. 


 “향수 광고였나 보네요.”

 “그랬지. 어떤 브랜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


 B의 눈꺼풀이 몇 번 여닫혔다. 모호한 표정이었다. 내가 보고 온 브랜드가 어떤 곳인지를 추측하는 듯했다. 가끔 B에게서 향수 냄새가 풍기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B는 향수에 대해 모르는 편은 아니었다.


 “B, 당신이 좋아하는 향으로 고를까?”

 “어떤 향을 좋아하는 줄 알고요.”

 “무슨 향이 좋은데?”

 “싱그러운 잔디 향기.”


 향수에 그런 향도 있던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B가 원하니 풀 냄새가 나는 향수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찾을 수나 있을까, 혹은 그런 향수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 그 어떤 것도 몰랐지만 향수라는 게 워낙 다양하니 하나쯤은 있을 법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사실 없는 건 그리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없다면 조향사를 닦달시켜서라도 만들어내면 됐다.


 “허니가 잔디 향을 좋아했어? 그 말 들으니 다음 휴가는 산속으로 캠핑하러 가야겠는걸.”

 “산에는 잔디보다 이끼가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랑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다시금 눈이 맞닿았다. 그치지 않은 달빛이 B의 옆얼굴을 스쳤다. 틀림없이 캠핑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잔디 대신 이끼가 낀 땅 위에 텐트를 치고 못을 박아 고정한 뒤, 넓지 않은 공간에 B와 함께 갇힌다. 얇은 텐트의 벽을 꿰뚫고 달이 녹아내리는 착념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있으면 다 좋지.”


 설령 그곳이 지옥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끼 낀 산도, 잔디 깔린 들판도, 무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전쟁터도, 언제 명령이 내려올지 모르는 휴일의 집에서도.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곳에 B가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B의 눈꺼풀 아래로 연보랏빛이 점멸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내가 눈을 감았다. 밀려든 평온함에 피곤이 쏜살같이 찾아들었다.


 “잘 자요, A.”


 라일락 향기가 나는 새벽이었다.







 copyright  ROMAN(愛) all rights reserved

'commission > wor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미션 A (3248자)  (0) 2020.09.01
커미션 B (4109자)  (0) 2020.06.18
커미션 C (2116자)  (0) 2020.06.18
커미션(12) 코스모폴리탄 3098자  (0) 2019.08.03
커미션(11) 사쿠라 마티니 2443자  (0) 2019.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