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B (4109자)
commission/works l


(커미션 전문)


 1.


 핸드폰 알람이 울려댔다. 처음엔 그게 알람 소리인 줄도 몰랐다. 낯선 멜로디가 잠을 방해하는 통에 침대에 굴러다니는 베개를 끌고 와 머리 위를 짓누르는 것으로 소리를 차단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게 제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챈 건 그로부터 10분가량의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정확히 5분쯤은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고, 5분은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자겠으니 그냥 일어나는 게 낫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구시렁거리는 것도 잠시. 정신이 깨자 음악의 근원은 방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몇 년 만의 알람이었다. 나카지마 료타는 침대 아래로 상체를 기울였다. 바닥에 있는 핸드폰을 주워 알람을 해제했다. 핸드폰을 바꾸고서는 아예 처음 듣는 멜로디였다. 이제까지 알람을 켜둘 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이르게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시간 맞춰 나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이는 곧 알람 기능을 사용할 일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어쩌다 알람이 울리게 됐더라. 내가 알람을 맞춘 적 있었던가. 지난 새벽을 되짚었다. 알코올에 절은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화면 꺼진 액정에 제 얼굴이 비쳤다. 길게 숨을 뱉었다. 잠긴 목이 깔깔했다.


 고등학교 졸업.


 단어를 상기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힘 풀린 손에서 핸드폰이 추락했다. 침대 모서리와 부딪친 핸드폰은 그대로 튕겨 나가 둔탁한 소음과 함께 카펫 위를 나뒹굴었다. 팔을 뻗어 주변을 휘저었다. 손끝에 닿은 이불을 잡아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살아있을 예정이 아니었는데. 


 상념엔 착잡함이 서렸다. 분명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사라질 예정이었다. 어떤 이에게도 노출하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 나카지마 료타의 근원이 되었던 계획. 가볍게 살다가 떠나가는 것. 생에 잠깐 머물다 모든 것들과 영영 헤어지는 것. 분명 료타는 이 계획을 이루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죽지 않고 살아있게 되었느냐면. 


 몸을 옹송그리고 호흡을 억눌렀다. 몇 초, 몇 분.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숨을 들이마시기 무섭게 목젖을 가르고 기침이 튀어나왔다. 눈꼬리에 물이 맺혔다. 이불을 걷어내고 애먼 천장만 쏘아보았다.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었다면 미련도 진작 끊어냈을 터다. 해낼 수 없으니 의미 역시 없는 행동이었다. 나카지마는 호흡을 고르며 침대 위에 몸을 펼쳤다. 메마른 시트가 맨살을 긁었다. 홀로 남은 공기가 서늘했다. 문득 탈력감이 찾아들었다.



 2.


 천장이 환한 빛을 난사하다 검게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고 구석진 곳에 서서 주머니를 뒤졌다. 연초 하나를 빼물었다.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데 누군가가 나카지마의 어깨를 건드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으나 볼륨 높은 음악 탓에 주변 소음이 들리질 않았다. 왜요? 입 모양으로 물어보자 상대가 나카지마가 쥐고 있는 라이터를 톡톡 두드렸다. 그냥 라이터만 건넬까 하다가 내미는 대신 뚜껑을 열었다. 상대가 눈치껏 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얀 개비 끝에 불이 붙었다. 뺨이 홀쭉해질 때까지 필터를 빨아들인 상대가 긴 숨을 내쉬었다. 잿빛 연기가 눈앞에 번졌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길었던 머리를 커트친 채 모습을 드러내곤 광장에 앉아 담배 하나를 물던 여성. 그 끝에 불 한 번 붙이겠다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남자들. 장면은 금세 막을 내렸다. 나카지마는 묵묵히 라이터를 닫았다. 시선이 맞부딪치고 입술이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상대가 팔에 손을 감아왔다. 벽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떨어뜨렸다. 나서는 길에 주문했던 음료가 떠올랐다. 상대와 술 한 잔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시간은 짧았다. 엮인 팔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미련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멀어지는 간판의 네온사인이 잠시간 깜빡이는 것 역시 알 도리가 없었다.



 3.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는 습관. 졸업한 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액정 위에서 손가락을 두어 번 밀었다. 이름 순서대로 정렬된 목록들 사이에서 다だ행을 찾았다. 무의식은 종종 본능을 앞세웠다. 혀가 되뇌었다.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 카……. 고장 난 회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멋모르고 공백을 헤맸다. 목적을 찾지 못한 손가락은 끝내 자주 부르던 호칭을 기억했다.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렸다. 다시 히라가나를 읊었다. 마ま행에 이르러서야 움직임이 멈췄다. 멍하니 내려다보던 동공에 초점이 잡혔다.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뒤집었다. 액정 모서리엔 금이 가 있었다. 소파에 기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죽음(그러나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결심에 비해 너무 폭력적인 표현이라 여겼으므로)을 포기한 이후 나카지마는 핸드폰을 바꿨다. 번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기계가 되어버린 옛날 핸드폰은 전원을 끄고 서랍 깊은 곳에 쑤셔 넣었다. 새 핸드폰에는 새 번호가 찍혔다. 한 번 만나고 말 사람부터 여러 번 부대끼는 사람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깊이는 비등했다. 고교 무렵은 서랍 안에 묻었다. 그 시절이 서랍장 마지막 칸 속에 영영 잠들어 있었으면 했다. 그때 알았던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를. 그것으로도 충분히 나카지마 자신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사라진 셈 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몇 년이 지나면 핸드폰을 욱여넣었던 서랍을 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혹은 핸드폰을 숨겼다는 사실조차도. 정말이지 쉬운 일이라 여겼다. 인간이라면 무릇 망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러나 스물두 살의 나카지마 료타는 여전히 제 방에 돌아오면 책상 서랍 네 번째 칸에 시선을 주었고, 손잡이를 당겨 여전히 그곳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눌렀다. 그럴 때마다 내재한 이성이 속삭였다. 버려야지. 정말 잊기를 바란다면 그저 봉인해서만은 안 되지. 끊고 잘라 네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멀찍이, 떨어뜨려 둬야지. 어딜 미련을 붙들어 쥔 채 잊을 생각을 하느냐고. 그건 무슨 터무니없는 바람이냐고. 기실 모를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알았다. 정말 학창 시절을 놓을 예정이었다면 동창들의 번호가 등록된 핸드폰을 폐기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었다면 어떤 변명도 없이 진작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만 했다. 쉽게 죽지 못한 탓에 쉽게 버리지도 못했다. 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에 손을 넣은 채로 이도저도 못하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멍청한 짓이었다. 사탕을 눌러 쥐고서 한참 기다리기만 했다. 언젠가 손을 뺄 수 있겠지. 언젠가는 욕심을 버릴 수 있겠지. 언젠가. 그 또한 미래를 기약하는 문구였다.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을 가리던 손을 떨어뜨렸다. 오랜 시간 눈꺼풀 위를 짓누르고 있어서인지 빛이 뭉개져 보였다. 천장이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멀거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4.


 “요즘 자주 안 오네.”


 자주 드나들었다는 연유로 말을 튼 바텐더가 대뜸 말을 꺼냈다. 숫제 의아하단 투였다. 나카지마는 유리잔을 매만졌다. 그랬나? 돌이켜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요즘 바빠서.”

 “무슨 일 하는데?”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했다. 마주하는 빈도가 늘면 이게 문제였다. 나카지마 료타라는 개인을 파고들고 싶어 하는 것. 대답해 줄 수 있는 물음이 아니었으므로 난감했다. 상대가 답을 바라고 있는 기색을 내보이면 더더욱. 유리 표면 위로 맺힌 물방울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관망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생각.”

 “어떤 생각.”

 “어떻게 먹고 살까. 그런 거.”


 다들 그러잖아. 나도 똑같지 뭐. 별거 아니라는 투로 덧붙였다.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했으니까.


 “그래. 피로해 보인다.”


 글라스를 거꾸로 매달아 진열하던 바텐더가 나카지마의 눈 밑을 가리켰다. 입꼬리만 당겨 웃었다. 며칠 통 잠을 못 잔 건 사실이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삼키는 짓거리도 한두 번으로 충분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올 때까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그 어떤 상념도 무감각한 시간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했다.


 수없이 많은 충동들이 머릿속을 꿰뚫었다.


 죽고 싶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

 무료하다면서.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이제 와서 늦었지.

 정말 늦었다고 생각해? 핑계를 찾고 싶은 건 아니고?


 어떤 논리에는 진실이 결여되어 있기도 함을 알았다. 그날은 이른 시간에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파트너 안 찾고?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남아서. 이번에는 되물어오지 않았다. 고심할 일 없어 다행이었다. 바를 나와 불이 꺼지지 않은 거리를 홀로 거닐었다. 계절이 다 지나가는데도 여태 바람이 쌀쌀했다. 여러 술집들. 호객 행위. 카페.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 피어싱 가게. 술 취한 남자. 노점상. 가방을 메고 전화하는 학생. 이곳저곳을 스쳤다. 동공에 담겼던 것들은 금세 지워졌다. 큰길에서 택시를 잡을 생각이었다.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세웠다. 못 박힌 시선이 겨냥하는 표적을 깨달은 직원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 안경인데요. 하나 마련하지 않으시겠어요?”


 가는 테가 인기예요. 종종 뿔테를 선호하시는 분도 계시구요. 나긋한 음성은 더없이 상냥했으나 귓가엔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 가만 손을 뻗어 안경테를 만졌다.


 안경을 걸친 눈가. 뺨 위로 흘러내리던 머리칼. 목소리에 섞이던 웃음기. 모든 게 선명하게 떠올라 괴롭다고 생각했다. 잊힐 날을 고대했다. 말끔하게 포기할 수 있다면 쉽게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만이었음을 실감했다. 헛웃음이 터졌다. 이거 하나 드릴까요? 물음에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실례했어요.


 택시를 타는 대신 횡단보도를 건넜다. 네가 어떤 안경을 썼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뿔테였던가. 검은 테였나 은색 테였나. 아니면, 무테였던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말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어쩌면 지금은 안경을 쓰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서웠다.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게…….



 5.


 방안은 캄캄했다. 불을 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가장 안쪽에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묻어두었던 고교 시절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전원 버튼을 눌렸다. 켜지지 않는 건 아닐까. 제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곧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안도 섞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사탕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유리병 안에 갇혀 있던 손을 꺼내고자 손목을 뒤틀었으나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병을 끌어안은 채로 깨달았다. 너무 오래 쥐고 있어서,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서. 사탕이 녹아 손바닥에 달라붙었음을. 이젠 제가 욕심내지 않아도 욕심이 저를 붙잡고 있음을. 끝끝내 손을 꺼내도 이미 그 손은 더럽혀져 있을 것임을.


 전화번호부를 내렸다. 다카기 마이. 이름을 찾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하나씩 옮겨 눌렀다. 호흡을 골랐다. 어쩐지 눈가가 시큰했다. 전화를 걸었다. 귓가에 핸드폰을 붙였다. 혹시 번호를 바꾼 건 아닐까.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아닐까.


 ……


 신호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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