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11) 사쿠라 마티니 2443자
commission/works l

 

(커미션 전문)


친애하는 아델하이트

 

푸른 여름달의 스물두 번째 밤

사실 수신인의 이름에 당신의 이름을 쓸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에밀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그야, 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편지의 형식을 따르기 위해 이름은 꼭 쓰기로 했답니다. 어쩌면 그가 당신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고요. 물론 다른 사람 아닌 당신에게 꼭 전달하라 언질은 해두었지만 불가피한 상황까지 고려하자면 이름을 적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제 슬슬 여름의 초입이고, 계절에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델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관리가 조금 까다로워요. 언제나 똑같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니까. 그래서 이번엔 냉동고를 하나 구매할까 해요. 이전 여름에는 그럭저럭 보내긴 했지만, 나름대로 아델이라는 단골이 생겼으니 좀 더 완벽하게 보온을 할까 해서요. 물론, 당연하지만 이게 아델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저 슬슬 살까 고민하던 시기와 겹친 것뿐이니까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여름은 시원한 술을 기대하셔도 될 거 같아요. 좋은 밤 되시기를.

 

일을 끝마친 뒤,

J

 

 


 

 

더위를 타고 있을 아델하이트

 

푸른 여름달의 서른 번째 낮

날이 제법 더워졌으니 조심하세요. 아마 근래 들어선 술집보다 숲속이 더 시원할 것 같긴 하지만, 숲속에선 마실 걸 보관하기에 여의치 않을 테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미지근한 술은 입에 대고 싶은 욕구가 차오르진 않잖아요. 늘 휴대하며 마시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역시 술을 마실 때는 바에서 마시는 게 제격이라 느끼거든요. 고아한 귀족이야 뭐, 그네들의 연회나 정원 같은 호화스러운 곳에서 마시겠지만. 덧붙이자면 그들에게 특별한 유감은 없답니다.

물론 귀족들이 서민의 술집에 몰래 출입하는 일은 되도록 없기를 바라죠. 허나 언젠가 한 번쯤 이곳에 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우아한 도련님이나 아가씨가 화상을 입을 게 염려가 되긴 하지만 삶에 부족하지는 않을 경험이 되겠죠. 어쩌면 평온한 인생에 유일한 낙이 될 무용담도 생길 수도 있을 거고요.

술 상대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근래 들어 일이 없어 심심해지려는 참이라 말 상대로는 나름대로 적격이라 여기고 있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위스키 한 잔 걸치며,

J

 

 

 


 

To. A D E L H E I D

 

붉은 여름달의 일곱 번째 낮

왜 아델이 아닌 아델하이트라 편지를 써서 보내는지 궁금해 한다고 에밀리가 말을 전해주더군요. 딱히 편지의 형식 때문에 모든 철자를 기재하는 건 아니에요. 이유를 굳이 붙이자면, 평소엔 아델이라고 부르니 글로 적을 때만큼은 제대로 챙겨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혀와 글은 다르죠. 부를 땐 아델이 편하지만, 쓸 때엔 종종 모든 이름을 적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하지 않던가요. 보내는 이에 아델이라는 애칭 대신 아델하이트라 적는 건 그런 연유에서예요.

사실 이런 형식의 편지를 쓰는 일이 흔한 게 아니라 어떤 말을 더 적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제가 직접 펜을 잡는 일이 극히 드물기도 하고, 상대와 사이좋은 적도 별달리 없었던 터라. 대부분 상대의 어깨 위를 걱정해주는 안부 편지나 이따금 보내곤 했죠. 그러니 일반적인 형식과는 무관하게, 근래 있었던 일이라도 전해드릴까 해요.

얼마 전 용병 무리가 하나 방문하더군요. 어쩐지 멀쩡한 몰골임에도 꼴 보기 싫다 했더니, 그 무리였어요. 아델이 물러나게 했던 그 건달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그렇게까지 기억에 남을 얼굴들도 아니었을 테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기억하고 싶은 얼굴들도 아니긴 하죠. 괜히 외웠다간 쓸데없는 데에 낭비한 머리만 아까워지지 않겠어요?

사실 그들도 이곳에 제법 자주 찾던 고객이긴 했을 거예요. 물론 아델에게 손님을 쫓았다고 힐난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아시리라 믿어요. 그날 이후에 방문한 아델에게 술 한 잔을 서비스하고, 인사도 몇 마디 건넸으니까요.

무리는 당신의 얼굴을 찾는 듯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윽고는 저와 시선을 마주했죠. 아까 언급했듯 그다지 기억하고 싶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주인된 도리로서 수그릴 이유도 딱히 없으니까요.

그들의 첫 마디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내 기억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구태여 토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의미 없는 문장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면, 저더러 아델과 친하냐고 물었던 것이겠네요. 그때 조금 고민이 컸어요. 아델이 생각하기엔 우린 어느 정도의 친분 관계까지 명시될 수 있나요?

 

 

제법 만나는 사이라고 대답한,

J

 

 

P.S 온도를 맞추기 위해 냉동고에 미리 넣어둔 아델의 잔이 얼어붙게 생겼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달을 맞이하고 있을 아델하이트

 

붉은 여름달의 열두 번째 밤

아델의 잔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셨었죠. 하긴, 바꾼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으니까요. 얼굴을 보면서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술집이 소란스러워서 대답을 제대로 못했으니 편지에 써볼까 해요. 그렇게 거창한 사연이 담긴 잔은 아니라는 사실은 미리 명시해둘게요.

달 축제가 열렸던 날이었던가요. 그날은 조금 유감이었죠. 어떤 노점에 가도 아델이 좋아하는 술은 팔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말을 물어물어 도착한 판다던 가게에서도 우연찮게 딱 떨어졌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으니 유난히 불운한 날이었네요. 더군다나 여름답게 무더운 날씨였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아델에겐 축제 자체가 썩 즐겁게는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단 생각도 들고. 하지만 덕분에 돌아갈 땐 편했어요. 몰려들던 인파가 아델을 보고선 두 갈래로 쪼개졌던 게 제법 장관이었다는 말은 그때도 했던 것 같네요.

잔은 아델과 헤어진 후에 발견했어요. 잔의 바닥에 늑대 문양이 새겨진 게, 어딘지 모르게 아델이 떠오르더라고요. , 물론, 그래서만 산 건 아니에요. 명색이 축제인데 기념품 하나쯤 사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때마침 아델을 닮았으니 다음에 왔을 때 이 잔에 건네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어서. 잔이 마음에 든다면 빼두도록 할게요. 그거 하나 빼두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니까.

곧 장마라고들 하죠. 며칠 전 소나기를 보며 느꼈지만 비 구경도 그럭저럭 즐길 법하더라고요. 빗소리는 술의 가장 좋은 안주기도 하고. 그래도 빗소리만 안주 삼기엔 아무래도 뱃속이 심심할 테니 요기할 것 하나쯤은 내드리는 게 수지에 맞을 것 같군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어요

 

 

당신의,

J

 

 

P.S. 머그컵 하나 동봉합니다. 저는 차도 곧잘 마셔서요.

P.S.S. 혹시 차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시다면 낮에도 한 번 방문해주세요. 알려드릴 의향은 충분하니까요.

 

 

 

¹박준,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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